송숙남교수

송숙남 Art & Design

Professor

작품평론

8회 개인전 - 역동적 빛과 형태<사이>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심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sooknam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2-01-12 11:08

본문

1. 장르의 경계창작과 교육의 입장을 횡단하며 

장르의 경계를 횡단하며생동하는 형태와 파동 치는 빛깔에 작가의 호흡을 실어 역동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온 송 숙남교수가 제 8회 개인전에서 다시 <오브제탐구><보석예술>이라는 또 하나의 <경계>를 가로질러그녀 특유의 감성과 사유가 조우했던 조형탐색의 자취들을 펼쳐 보인다. 

목판화와 아크릴화디지털프린트그리고 다시 주전자라는 용기를 도입한 오브제와 보석작업들이들 사이의 거리는 결코 좁혀질 것 같지 않다게다가 그녀가 회화에서 성취한 작업의 성과는 순간적인 호흡을 바람처럼 가볍게 처리하는 드로잉과 다색의 면과 선이 교차하는 순간에 생성되는 순수추상의 역동적 생명성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그런데 노련한 연금술사처럼그녀는 평면회화의 점형태의 생명선을 실재의 오브제에서 그대로 육화시킨다실같이 구불거리며 퍼져가는 금속의 선용기의 몸체와 표면의 피부한 낱 빛깔있는 돌로 환원된 보석그들은 색 점과 색 면의 육신으로 변신하여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며 얽매이는 금사에 묶이고 서로 연결되어 실재하는 추상형식으로 거듭난다그들은 그렇게 경계를 가로지르며 환영(illusion)에서 실재(reality)로 변신한다그리고 순수한 형태의 빛의 가역반응 속에 역동하는 형태의 생명으로 태어난다경계를 횡단하는 이 작업은 폴 클레가백화난만했던 문명사회 유럽을 죽음과 폐허로 만든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룬 뒤내적 비전과 충동을 실현할 순수 추상에서 새로운 미술의 비전을 찾아 문장과 삽화창작활동과 예술교육사이의 유기적 통합을 실현하려 했던 탐색자세와 닮아있다거의 1세기의 차이를 두고 있는 송 교수와 폴 클레 작업 사이의 관계 항을 짚어보는 것은그들이 추구했던 순수추상이라는 공통점에 의미를 두어서가 아니다전쟁을 통해 <근대이성>에 대한 부정적 세계관이 팽배하던 시점에이른 바 반미학이라는 미술 담론의 표상으로 공산품인 변기를 대체한 마르셀 뒤샹과 달리폴 클레가 추상을 기본으로 하되 의식저변의 신화나 오래된 기억의 지층에 자리 잡은 기호들을 자유롭게 끌어내 상상력과 감성의 세계로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그것은 개념화된 현대미술문제를 논한 <예술의 종말론>조차 진부한 논리가 되어인문사회학적 담론과 글로벌 자본시장의 투자 상품으로써 명맥을 유지하는 오늘의 미술상황에서시대적 추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세련된 듯하면서 서툴고 낯익은듯하면서 날(raw)것 같은 드로잉달콤한 듯 하면서 서늘하고깊고도 가벼운 송 교수의 색채추상이 우리의 시각과 감성의 가치를 환기시켜주는 것에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나아가 클레의 조형탐구가 비우하우스 미술교육에서 그러했듯그녀가 추구하는 작업이 필시 미술교육의 공고한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2. <사이>에서 펼쳐지는 알레고리의 변주 

앞서 살펴보았듯이 다양한 장르의 변주를 넘나드는 송 교수의 작업은 얼핏 보기에 천연스런 장난기와 가벼움으로 싱그럽다작가의 순간적 호흡과 감정을 실어 율동치는 선과 잠시 고요를 부르는 점 점 점그리고 해독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구겨 넣은 듯 소밀한 작은 화면이 상호 가역반응을 일으키는가 하면다층구조를 이루며 발하는 색채들의 향연은 생명의 약동감을 느끼게 한다클레가 표현한대로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난 창조적 충동이 불꽃처럼 생명을 얻어’ 그녀의 손을 거쳐 화면으로 전이돼 우리의 눈과 마음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 같다나아가 인생과 우주에 보랏빛 환상을 품고 있던 유년기의 감성을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녀의 작업이 매번 은혜로운 만남의 찰나로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그녀는 언제인가 별안간 번개처럼 만나게 될 <예술>이라는 <존재>와의 해후를 갇혀있는 꿈으로 상정하고 반복과 훈련을 거듭한다면 마침내 그 꿈에 다다르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그 암중모색은 일상 속에서 멈추지 않는다나뭇가지 끝에 머물러 있는 한 마리의 새의 시선에서 생명이 감내해야할 인내의 무게를 가늠하고허영과 욕망에 서로를 옭아매면서도 맑은 영혼에 대한 갈구를 멈추지 않는 모순된 인간존재에 번민한다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모습을 한 나무의 뿌리와 가지열매와 꽃들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허물없이 어울리는 비결을 묻기도 하고반짝이는 아콰마린을 마주하고는 마치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듯 따뜻한 체온과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미래의 비전을 나누고 가슴으로 안아본다. 

이렇듯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하나하나의 작업들은 요즈음의 시조에 맞추어 이해하자면 그녀 자신이 상정한 존재를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찰나 적으로 응시한 사건의 알레고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그렇다면 그 알레고리는 바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서부터 그 존재론에 이의를 제기한 하이데거와 데리다까지 인간의 존재자사이에 끝내 만나질 수 없는 거리로 규정한 <사이>의 표상이고그녀가 진정 바라는 존재와의 눈맞춤의 은총은 영원히 보류되고 <사이>만 연속될 뿐일 터이니그 미끄러짐의 여백의 파노라마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아닌가그렇다 해도 염려할 것은 없다시지프스가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벅을 감내하며 숙명에 결박당한 자신의 인간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간으로서 해야할 바를 수행하는 가운데 행복을 찾는 의식적인 존재였듯그녀는 한 손에는 날카로운 집게로 금속을다른 한 손으로 무거운 쇠망치를 들고뜨거운 불과 찬물 사이를 왕복하며 담금질하고 두들겨 대는 중노동을 전쟁을 치루는 행위로 비유하면서도 다행히도 나는 거듭된 일을 사랑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그녀가 응시한 <사이>의 알레고리의 변주는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변주는 어떠한가?



작품목판화 – 딱딱한 나무결을 파고들어 살점을 떼어낸 자리에 남긴 칼자국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목판화그 선입견을 배반하는 <Its soft love song><바라보다>라는 제명의 목판화마치 매끄러운 유선지 위를 날렵하게 스쳐지나가듯 유연하게 그려진 선작가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일까매끄럽고 유연한 선은 그 생명의 파동을 무한히 연장할 것 같이 뻗어가다 말미에서 찍찍 반복해 그은 불규칙한 선으로 뒤엉켜버린다때로는 물이라도 쏟은 듯 번지며 지워지기도 한다뿐인가작가의 기억 속에 묻어둔 어떤 사건을 메모라도 하려는 듯 이미지가 그려지다가 말고 지워지고 구겨진 장면만 남겨 펴보고 싶다화면은 자유로운 낙서와 천연스레 그리다만 이미지가 겹쳐 읽을 수 없는 메모가 되고 율동감 넘치는 하나의 낙서장이 된다. 


작품아크릴화 - <영광>이라는 제명의 다색 아크릴화는 프러시안블루의 짙푸른 심연에서부터 다색의 색 층을 이루면서 맨 위층에 황금빛과 백색의 화면으로 빛의 환영을 만든다그 사이에 무수히 상승하고 하강하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곡선들여기에 단호한 긴장감을 끌어내는 예리한 직선의 푸른 선얼마나 많은 손놀림의 반복이 거듭되었을까선들이 만나 색 면을 만들고 그것이 물감에서 색깔로 변신하여 빛의 향연을 펼친다작가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생각나게 하는 이 노동의 반복에서 마침내 도달할 희열의 순간을 꿈꾸며 거듭된 일을 사랑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행복해 한다순간이 작업이 시사하는 종교적 계시의 섬광의 비밀을 알 것 같다바로 그것은 폴 클레의 다색의 빛이 신비를 펼치는 <환상적 희가극 항해사 신바드의 전투장면>의 환상을 떠올린다. 


작품오브제 – 실버로 제작된 입체구조물<Baroque Vase>- 고의적으로 찌그러진 형태의 물주전자를 만들고는 다시 그 형태 속에 갇힌 오브제의 생명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목판화 속에 그려졌던 곡선을 닮은 금속선으로 주전자의 형태를 어지럽히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버리는 스털링실버로 제작된 오브제그녀에게 오브제는 시각적 환영의 한계를 벗어나 <실재>를 제시하려는 개념미술의 영역을 넘어 일관된 조형탐색의 결과 도달할 실재하는 회화의 비전을 전망한다하지만 그것은 이미 조각과 건축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작품보석예술 – 그 자체로 충분히 귀부인의 형상을 닮은 귀한 보석 카메오와 작지만 밤 하늘 별처럼 빛나는 황수정그윽한 비밀을 담고 있을 법한 흑적색 가닛이들도 구불거리며 몸체를 얽어매고 지나가는 20k 금빛 곡선의 주술로 송 교수의 조형세계의 일원이 될 뿐이다그들은 물감이나 연필 선을 대신하여 형상을 이어주는 생명의 곡선이고 빛깔을 발하는 색 면이며 형태를 구성하는 점이 되어 서로 어우러져 파동 친다다만 시각적 일루전의 선과 색과 면이 존재감을 강화한 금사와 보석으로 대체된 것이다. 


3. 되돌아보기 

이렇듯 다양한 변주를 보이며 경계를 가로질러 환영(illusion)에서 실재(reality)로 변신한 그녀의 이번 전시를 되돌아 볼 때 특히 돋보이는 것은 오브제 작업이다.

그녀에게 오브제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회화표현의 현실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채용되었던 것이다그것은 입체파이후의 회화가 그러했듯이 2차원 평면에<실재감>을 실현하기 위하여 채용된 것이었다그런 점에서 이전의 오브제작업은 평면에 부가된 입체물 이었다그러나 이번의 오브제 작업은 <시각적 환영>에서 <존재 그 자체>의 제시로 진일보한 것이다드로잉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곡선과 입체적 포름이 물질로써의 신체성을 지닌 실재(實在)하는 금속재의 선으로 변신하였다화면속의 평면의 이미지는 주전자라는 실재 용기형태로 살아났다그들은 실재공간 속에서 서로 얽매이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입체적 구조의 정물로 존재한다그런데 존재 자체의 제시를 위한 오브제 도입은 이미 미니멀 아티스트들에게는 일반화된 어법이었다그럼에도 그녀의 이 오브제 도입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관객이 보아주는 시선과 장소에 따라 아트에서 오브제로 가변하는 대상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그것은 평면회화에서 그러했듯이 선과 형태와 공간이 어우러져 이루어낸 한편의 구조적 구성물로 실재하여관객의 시선과 장소에 관계없이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이다적어도 마이클 프리드가 미니멀아티스트들에 대하여 비판했던 연극성의 개입과 미술 밖으로의 이탈이라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그러한 성격은 실용성의 한계를 지닌 보석작업에서도 연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규로 횡단하는 보석(寶石작업은 어떠한가그 단단하고 투명하고 빛나는 존재의 보석성서는 요한계시록 17장을 통해 바빌론 사회의 타락과 파멸로 이끈 가증한 음녀들의 욕망의 원천이었음을 그토록 오랫동안 계몽해왔건만지금도 여전히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며 권력의 상징성을 끝내지 않는 살아있는 존재이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원(祈願)과 욕망관계의식을 가장 압축하여 담보하고 있는 값비싼 돌이다그것을 다루는 예술이야말로 호사스런 장식의 세계로의 횡단일진데그녀의 작품세계를 얼마나 깊고 넓게 열어줄까그러나 의구심은 곧 사라진다예외 없이송 숙남의 조형세계의 일원이 된 그 보석은 하나의 빛깔을 발하는 존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인류문명에 동반되어 온 관습적이고 세속적 가치와 욕망의 역사나 환상적 기억은 망각되고아크릴화·목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