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숙남교수

송숙남 Art & Design

Professor

작품평론

3회 개인전 - 송숙남의 회화 자연, 외적 실제로부터 본질의 구현으로 고충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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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knam
댓글 0건 조회 50회 작성일 22-0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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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숙남의 그림은 전래하는 한국의 색채 감각 혹은 정서의 한 축에 이어지고 있다전래하는 색채 감각이란 무속과 궁정 양식과 일부 단청에 토대를 둔 오방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화려하고 강한 원색의 대비와문인화로부터 유래한 흑백의 농담을 중심으로 하는 심플하고 금욕적인 색채 감각그리고 천연 안료로 물들인 무명천에서 발견되는 자연의 속성을 닮으려는 심성을 말한다.

오방색이 색채의 풀어헤침을 통해 기의 무제한적인 표출을 대변한다면흑백의 전개는 가급적 색채의 절제를 빌어 기의 조절을 꾀한다오방색이든 흑백의 전개든 색채에 대한 관념적인 접근에 기울어져 있다무엇보다도 하늘을 대변하는 청색과 땅을 지시하는 황색그리고 우주의 전체 지평을 담아내는 먹의 육체(먹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색채의 지평을 말하며사실상 먹의 정도를 조절하기에 따라서 일체의 색 표현이 가능하다관념 등 색채에 대한 상징적인 태도가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반해 물들인 무명천에서 발견되는 색채 감각은 상대적으로 자연의 감각적인 속성에 한층 접근한다이렇듯이 물들인 무명천과 자연의 감각적인 속성의 닮음이 가능한 것은 다름아닌 사이색에 기인한다하늘과 물빛은 청색이 아니며땅은 황색이 아니며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풀꽃치고 황색이거나 적색인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사이색이란 청색이 아니면서 청색인황색이 아니면서 황색인 색채 혹은 색채 감각을 말하며굳이 그 근사한 예를 찾자면 파스텔조 특유의 부드러우면서 은근한 장식적 미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송숙남의 꽃 그림에 반영된 색채 감각을 이렇듯이 사이색 혹은 파스텔조 특유의 은근한 장식적 미감을 근간으로 하며그 근원은 자연의 감각적 속성을 닮으려는 무의식적 욕망에 이어진다한편으로 이러한 닮음의 욕망은 단순히 색채에 대한 이해에 머물지 않고 자연이 존재하는 방식에로 이어진다일테면 새리그래피 특유의 기법적 한계를 자유자재한 드로잉과 회화적 뉘앙스로 넘는 것이 그렇다.

물화와 기계적인 인상그리고 일체 뉘앙스의 소거를 말한다자연은 그 정체가 지나치게 명료하거나 뻔한 전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대신 분위기로뉘앙스로개체적인 부분으로개별적인 경험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미지들을 어긋나게 찍거나 비정형으로 정형화를 피하거나 그리지 않거나 무작위적인 드로잉과 얼룩으로 꽃과 꽃 사이에자연과 자연 사이에 어떤 틈새를 부여함으로써 자연의 실제에 접근하고 있다단순한 자연의 외적 모사를 넘어 자연의 호흡에숨결의 재현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관념 혹은 관심은 이번 전시에 새로이 선보이는 일련의 작업에서도 여전히 그 저변을 지배하는 중심 개념이 되고 있다작업은 목판을 지지체로 하고 있으며대략 그려진 부분과 덧칠된 부분그리고 새리그래피를 통한 이미지를 판화로 찍어낸 부위 등 새 지층을 이루고 있다이들 세 과정이 일회적인 행위로 그치는 대신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거듭됨으로써 내진감(화면 배후로 깊숙이 후퇴한 듯한 시지각적 효과)있는 화면과 색채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안료를 받아들이는 매체의 특성 탓이겠지만 종이에 찍혀진 이미지가 다소간 평면적이고 표면적인 인상을 주는 것에 반해목판에 가해진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더 깊이 있고 내면화한 느낌을 준다화면과 그 표면에 가해진 안료가 일체감을 이룸으로써 채색이 마치 목판 자체로부터 기인한 듯한 인상을 주는 점 역시 종이 작업과 다르다원색으로 가해진 이미지 부분이 아니라면꽃 그림을 특징짓는 장식적 미감과는 상이한 그림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근작에서 작가는 실제하는 모티프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예컨대 무등산 능선과 나뭇결과 나뭇잎과 풀잎 등의 자연 모티프로부터 주요 이미지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상으로는 추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들 구상적 이미지들이 반복된 덧칠과 오버랩된 처리로 인해 화면과 일체를 이루고 있음에 반해원색의 구획된 색면들과 균질화된 평면이 표면화되기 때문이다더욱이 부분적으로 차용된 기하학적 이미지들 역시 이러한 추상화적 인상을 배가시키고 있다여하튼 작가는 이렇듯이 화면의 배후로 숨은혹은 화면과 일체를 이루는혹은 무심하게 한 이미지 위에 또 다른 이미지를 겹쳐서 그리는 식의 자연 모티프의 처리를 통해 존재의 생과 사를 구분하는윤회관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가시화하고 있다윤회관에 의하면 일체의 존재는 궁극적으로 생과 사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위대한 힘에 종속되는 무한적 존재란 점에서 등가치를 이룬다.

이처럼 존재는 부재이며부재는 곧 존재이다무등산과 나무그리고 나뭇잎과 풀잎은 다르면서 같다같으면서 다르다이러한 자연관 혹은 윤회관의 인식은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과도 무관하지 않다곡선적이고 나선형적이며 비순차적이며 이접적인 시간 개념으로 직선적이고 순차적이며 단절된 시간관념을 넘어서려는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은 특히 예술가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시간 관념을 말한다그에게서 존재와 부재는 무시간적으로 통하는 동질의동류의 것이다.

한편 이 관념은 모든 존재를물질을 하나의 형상이기 이전에 항상적으로 변화하는 에너지요힘이며 강도의 한 속성으로 간주하는 현대 물리학의 성찰과도 이어진다결국 존재란 에너지가 팽창되는 지점을부재란 에너지가 소거되는 시점을 말한다.

보기에 따라서 숲 속에 기거하는 숲의나무의 정령이 느껴지기도 한다아마도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화면의 중심에 위치한 밝은 이미지 부분에서 어떤 빛의 속성이 연상되는 탓일 것이다특히 처녀림이 그렇듯이 숲이 기울수록 가녀린 한 줄기 빛은 그만큼 더 선명하며 그 자체로 신령스러운 법이다숲의나무의 정령이란 곧 자연의 정령이며 혼에 다름아니다.

결국 작가는 꽃 이미지를 다룬 종이 작업에서 자연의 외적 실제라는 한계 내에서 그 내면화를 시도했다면근작에서는 존재의 생산 순환원리를 빌어처녀림 한가운데 드리워진 빛의 형상을 빌어 자연의 본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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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고 조용한 곳에서 생명의 의지를 찾고자 하였다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적막한 세계가 있고 존재가치가 있음을 누구라도 알 것이다나는 자신의 밑도 끝도 없는 심리적 현미경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집요하게 쫓고자 매달렸고 또 그렇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나 자신 스스로의 감정에 신뢰감을 주는 일이 내게는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그것은 그들 나름의 삶의 형태에 나의 촌스러운 감흥과 난삽한 선이 얹혀져 이곳의 몇몇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선택과 표현적 고충은 뒤따르게 마련이고하나의 변화를 수반하는 데는 수많은 반복된 갈등과 노력이 필요함을 나는 안다참으로 애매한 그 무엇을 찾는 일부정확한 의문 속에 나는 나의 삶의 희망을 찾는다.

-1998 송숙남-